[2009-06]칼럼_화석화된 이론,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민주노동연구원2021-03-19 11:24 1230
“이곳이 위원장이 피살된 곳입니다” 노조간부들이 필자를 데려가서 보여준 곳은 필리핀 대학이었다. 우리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일부러 대학에 까지 들어온 것은 자신들의 지도자를 암살한 ‘저들’의 만행을 한국에서 온 우리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지목한 ‘저들’은 자본과 정권이 아닌 바로 노동조합이었다. 한 때는 동지였던 사람들을 암살범으로 확신하고 있는 듯하였다. 피살된 사람은 필리핀 노조 연합조직의 하나인 BMP의 위원장이다.
필리핀 노동운동은 1990년대에 극심한 분열을 경험하게 된다. 진보진영 노동조합의 분열은 KMU로 부터의 이탈에서 시작된다. 1993년 KMU의 12개 산하조직 가운데 3대 조직인 전국노동자연맹(NFL), 전국노조연맹(NAFLU), KMU 수도권지부가 이탈한다. 그 후에도 KMU를 이탈한 조직은 노동자단결협의회(CLU), 전국노동자연합(NCLP)을 창립하거나 TUCP에 합류되기도 하였으며 이들은 이후에도 이합집산을 거듭한다.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KMU가 분열되면서 노동운동은 끊임없는 분열을 계속하고 있다. 일정한 규모를 갖춘 노총이 7-8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소규모 노조연합단체는 이 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보수적인 노총인 필리핀노동조합총회(TUCP), 기독교 계통인 자유노동자연합(FFW), KMU로 대표되던 필리핀 노동조합은 1990년대에 다양한 조직으로 나누어지고 있다. 대부분이 KMU에 소속되어 있던 노조들이 이탈하여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으며 TUCP 계열의 보수진영 노총의 분열은 훨씬 적었다. 현재 필리핀에는 마오이즘 계열의 KMU, 트로츠키즘 계열의 BMP, 사회민주주의 계열의 APL 외에도 자유민주주의 계열 등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가진 노동조합 연합단체가 난립해 있다. 필리핀 노동조합 연합단체의 난립에 대해서 “저도 노총의 숫자를 정확하게 모른다. 언제 또 새로운 노총이 만들어 질지 모른다”라는 필리핀 노동조합 간부의 말이 잘 표현해 주고 있었다.
지금은 극심한 분열 상태에 빠져있지만 1980년대 필리핀의 진보적인 노동운동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KMU가 노동운동에서 지도적인 위상을 확보하고 있었다. KMU는 사회운동조직인 신애국동맹(BAYAN)과 연계하여 마르코스 독재에 대한 전면적인 투쟁을 전개하면서 필리핀 민중운동을 이끌고 있었다. 마르코스 정권의 계엄령 하에서도 파업을 강행하면서 주요 간부가 대거 구속되었으며 KMU가 불법화되는 상황에서도 굽히지 않고 투쟁을 전개하였다. 투쟁과정에서 강고하던 KMU의 지도력은 1986년 필리핀을 강타한 민주화운동을 기점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1990년대 많은 조직이 KMU를 이탈하면서 조직력과 영향력은 크게 약화되고 있다. KMU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그 이후의 사회변화라는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었다.
KMU는 BAYAN과 연계하고 있으며 필리핀 공산당(CPP)의 영향 하에 있다고 평가된다. 따라서 KMU의 정치적 역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리핀 공산당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공산당은 모택동주의 노선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노선에 따라 공산당은 필리핀 사회를 반제반봉건사회로 규정하고 농촌에 근거를 둔 신인민군(NPA)을 조직하여 지구전적인 해방전쟁으로 도시를 포위 공격하여 프롤레타리아와 농민, 도시빈민이 중심이 된 인민민주주의 혁명으로 권력을 장악한다는 모택동주의 노선의 전형적인 강령을 따르고 있었다. 공산당은 대규모 신인민군을 조직하여 해방구 건설을 위해 투쟁하였으나 해방구 건설에 실패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1980년대 필리핀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공산당은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영향력은 약화된다. 공산당의 혁명 전략과 맞지 않은 민주화운동이었기 때문에 참여보다는 소극적으로 방관하였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사회운동에서의 역할은 약화되고 있었으며 정치지형 등 외부적인 상황이 변화하면서 내부 갈등이 증폭되었다. 객관적 상황의 변화를 고려치 않고 농촌을 중심으로 한 지구적 무장투쟁을 추구하는 지도부의 교조적 노선을 비판하며 도시를 중심으로 한 대중투쟁을 요구하던 세력인 마닐라-리샬 지부가 1993년 이탈하면서 공산당은 역사적인 분수령을 맞이하게 된다. 공산당의 갈등과 분열은 노동운동에 곧바로 영향을 미쳐 노동운동의 분열과 갈등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필리핀 진보진영 노동조합의 분열의 시작이 된다.
필자는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하던 KMU의 영향력이 약화된 주된 원인을 필리핀의 상황이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사회분석 방식과 이념에 집착하면서 변화하는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였던 점에서 찾고 있다. 필리핀 사회구조와 운동이 변화하고 있음에도 모택동주의에 집착한 전략전술이 운동에서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조직 내의 갈등과 분열로 이어지게 되었다. 정권의 강력한 탄압과 ‘필리핀 2000'이라는 프로그램에 상당수 노동조합을 포섭한 라모스 정권의 분할지배전략도 KMU에게는 유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코스 정권의 계엄령 하에서도 도리어 조직력을 확대하였던 KMU의 세력이 약화된 이유는 전략선택의 오류와 이로 인한 내부 갈등과 분열이었다. 노조의 분열은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을 초래하였으며 필리핀 노동운동은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필리핀 노동운동의 미래를 묻는 필자의 질문에 한 노조간부는 “5년 후에도 지금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느 노동조합도 필리핀의 노동운동을 주도적으로 정리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우울한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의 노동운동도 새로운 운동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 보다 높다. 노동운동은 노동운동을 억누르고 있는 중첩된 위기를 해쳐나가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안고 있다. 노동운동의 위기요인은 복합적이다. 그렇지만 위기요인 중에서 노동운동의 방향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어려운 과제이다. 비리와 조직구조를 개편하는 과제를 넘어 노동운동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는 한국의 노동운동이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서 있기 때문이다. 경제구조가 바뀌고 노동시장이 변화하고 있으며 노동자의 구성도 바뀌고 정치사회 지형도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대기업 노동운동이 한국사회의 위기의 주범인가 아닌가를 둘러싼 딱지붙이기에 골몰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 노동운동을 비롯한 한국 노동운동의 올바른 운동방향을 모색하고 이를 현실로 만들어 내기 위한 지난한 실천이어야 한다. ‘탓’하기에 앞서 ‘어떻게 할 것인가’가 우리의 화두가 되어야 한다.
며칠 전 어느 토론회에서 “화석화된 이론”이라며 운동권 일부의 운동노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 토론자의 논거는 수십년전 다른 나라에서 형성된 이론을 현재의 한국사회에 글자 그대로 적용하려는 주장에 대한 비판이었다고 필자는 이해하고 있다. 토론회에 앉아 있는 필자의 머리에는 노동운동이 현실에 맞지 않는 이론을 고집한 결과 노동운동의 사회적 영향력은 훼손되었고 노동운동은 분열을 거듭하며 ‘네 탓’하기에 바빠진 필리핀 노동운동의 현실이 스쳐지나갔다. 우리 운동이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은 없을까? 라는 생각이 여전히 주위를 맴돌고 있다.
이상학(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 진보정치에 실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