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3]칼럼_조세 형평성을 생각한다
민주노동연구원2021-03-19 11:20 1213
국회에서 세금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한나라당에서는 세금을 깎겠다는 감세를 주장하고 있고 정부에서는 세금을 더 거두려 하고 있다. 얼마 전에 법인세와 소득세를 인하하였던 국회가 다시 세금을 깎는 결정을 할지, 아니면 부족한 세수확보를 위해 서민들의 실질적인 세 부담을 늘리는 결정을 할지 궁금하다. 국민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점과 사회양극화 해소 등을 위한 재원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조세문제는 뜨거운 감자임이 분명하다.
세금을 둘러싼 논란의 중심에는 ‘조세형평’이 서 있다. “나만 세금을 많이 내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당연히 조세저항이 생기고 세금을 둘러싼 분란이 격화된다. 한 방송사의 조사에 의하면 ‘고소득자가 세금을 너무 적게 낸다’는 의견에 51%가 동의를 표시했다고 한다. 최근 불거진 고소득전문직 종사자의 낮은 세금과 유리알 지갑을 찬 임금생활자의 많은 세금을 둘러싼 논란도 형평성 문제다. 소득이 완전히 파악되는 임금생활자는 세금을 꼬박꼬박 내지만 소득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전문직종사자나 자영업자는 세금을 적게 낸다는 것이다.
좀 더 구조적인 측면에서 보면 직접세와 간접세의 비중으로 인한 불공평성이 있다. 우리나라의 간접세 비중은 47.8%를 차지하고 있다. 간접세 비율이 높다는 것은 세금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약하다는 뜻이다. 직접세는 소득수준에 따라 누진적으로 세금을 내지만 간접세는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똑같이 세금을 낸다. 이재용씨가 맥주 한 병을 마실 때 내는 세금과 서울역 노숙자가 맥주 한 병을 마실 때 내는 세금이 같다. 세금이 본연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간접세의 비중을 낮추고 누진율이 적용되는 직접세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최근 부동산 세금이 쟁점이 되고 있지만 재산에 부과되는 세금과 임금소득에 부과되는 세금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
세금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탈세가 적지 않다는 데에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특히 고소득층이나 재벌가 등 힘 있는 사람들의 ‘절세 또는 탈세’에 대한 의혹이 강하다. 힘이 없어서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다는 불만이다. 내어야 할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탈세는 조세의 형평에 대한 심한 박탈감을 가져온다.
누구에게 세금을 더 걷고 누구의 세금을 줄여줄까? 하는 문제도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얼마 전 국회는 법인세와 소득세율을 인하하였다. 세율인하의 이유는 경제의 활력을 불어넣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금인하가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 보다는 세수 부족을 부채질하였다.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로 혜택을 본 계층은 상대적으로 소득이 많은 계층이었다. 임금생활자와 사업주의 절반 정도는 면세점 이하의 소득이다. 세금을 낼 정도의 소득이 되지 않기 때문에 직접세를 깎아주어도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깎일 세금이 없기 때문이다. 소득이 많은 사람들은 세금 인하로 상당한 혜택을 누렸다. 조세정책이 사회양극화 해소에 긍정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세수부족이 문제가 되자 정부는 소주세, LNG세 등 저소득층의 소비가 많은 품목에 대한 세금인상을 들고 나왔다.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 깎아준 세금으로 인한 세수부족을 저소득층에게 상당부분 전가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나라의 조세 부담율이 20% 수준으로 선진국들보다 높은 편이 아니다. 조세부담율과 사회보장 부담율을 합친 국민부담율도 25.4%로 G7국가의 34.9%보다 낮다. 그럼에도 일부계층에서 조세에 대한 저항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양극화 등을 위해서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한 현실을 고려할 때 가벼이 생각할 일이 아니다. 조세저항은 형평성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피하기 어렵다. 조세형평을 이루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한다.
이상학(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 2005. 11. 25 매일노동뉴스